주말 > 글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주말

페이지 정보

작성자 Chlora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211.99) 작성일18-02-04 18:34 조회2,204회 댓글4건

본문

 

때로는 그저 게으르게 보내고 싶은 하루가 있다. 시간의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흘러가는 일상들을 마냥 바라보고만 싶은 날.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다. 트레이닝도, 팀원들의 자료도, 쌓여있을 보고서도, 오늘만은 내려놓으리라. TV 너머에서 재롱을 떠는 강아지에 정신을 집중하며 이슬비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 잊자. 강아지 귀여워. 너무 귀여워.

 

문득 어깨가 시려 이불을 끌어올리려니 가슴께에서 꿍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랬지, 미안해. 머리를 쓰다듬으면 강아지처럼 배에 얼굴을 비빈다. 콧날이 배꼽에 스쳐 간지럽다. 조금 푸석한, 검은, 뿌리가 희끗한 머리. 조만간 염색을 다시 해야하지 않을까. 그녀는 그가 염색을 그만뒀으면 싶다. 건조한 머리칼은 단지 그가 자주 밤을 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기없이 가끔 벌겋게 충혈되는 눈동자도 그렇다. 새하얀 머리도, 황금빛 눈동자도, 좀 더 자주 보고싶다. 지금 말해봐야 싫다고만 하겠지. 괜히 약이 오른다. 나는 이렇게 네가 걱정되는데.

 

“왜 그래?”

 

실컷 부비적거린 듯 느긋한 목소리. 사람 속도 모르고. 손가락을 세워 머리를 헝크러뜨린다. 뻣뻣한 머리칼이 제멋대로 뻗친다. 길게 자란 옆머리에 숨겨져있던 귓바퀴가 드러난다. 굴곡을 따라 손가락을 굴리니 간지럽다는 듯 어깨를 움추린다. 손톱을 세워 귓등을 긁어본다. 간지럽거나 따갑다고, 불평하고 고개를 빼볼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 그저 얼굴만 파묻고 있다.

 

“그냥, 아무것도 아냐.”
“그렇구나.”

 

시선을 다시 TV로 향한다. TV 속 강아지는 주인의 무릎 위에 앉아 세상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래를 보면 엉망이 된 검은 머리가 또 강아지처럼 가슴에 기대 누워있다. 쓰담, 쓰담. 손을 잠시 멈추니 어리광부리듯 무게를 싣어온다. 여유롭다.

 

“무거워.”
“…조금만 더.”
“팔 아파.”

 

이세하는 요즘 부쩍 어리광이 늘었다. 어쩌면 이것이, 한 꺼풀만 벗겨나면 드러나는 그의 본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무관심을 연然하여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었을지도.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가 가엽다고, 이슬비는 또다시 그리 생각한다. 마침내는 그녀에게 가면 뒤의 모습을 보여준 그가 고맙다. 여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더라. 또 앞으로 그는 어떻게 바뀔까. 더 많은 모습을 알고싶다고 생각하며 이슬비는 한동안 손을 움직였다.


-
너무 짧아서 안 올릴까 하다가 그냥 올리긴 함.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Roneve님의 댓글

Roneve 이름으로 검색 아이피 59.♡.192.38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때로는 짧은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목록

Total 540건 1 페이지
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540 Time Paradox(6) 댓글1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14 370 9
539 Time Paradox(5) 댓글2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09 351 6
538 한줄기 희망 인기글 록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02 474 11
537 Time Paradox(4) 댓글2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4-30 507 7
536 Time Paradox(3) 댓글3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4-27 407 6
535 Time Paradox(2) 댓글2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4-20 527 10
534 잊혀지다-Consequence of Life 댓글1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4-05 750 10
533 Time Paradox(1) 댓글1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4-04 534 11
532 Time Paradox-Prologue 댓글1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3-30 772 12
531 잊혀지다-Epilogue 댓글9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3-26 1090 12
530 잊혀지다(10) 댓글5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3-21 1002 11
529 잊혀지다(9) 댓글2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3-12 1239 11
528 잊혀지다(8) 댓글3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3-01 1427 11
527 클갤문학-세하슬비)두 사람 사이의 거리 댓글2 인기글관련링크 정보중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26 2290 14
526 잊혀지다(7) 댓글2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22 1378 9
525 잊혀지다(6) 댓글4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15 1784 12
524 잊혀지다(5) 댓글2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08 1668 8
523 아웅다웅 인기글 설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08 1498 10
열람중 주말 댓글4 인기글 Chlora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04 2205 13
521 잊혀지다(4) 댓글3 인기글 Hains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2-03 2104 12
게시물 검색

접속자집계

오늘
624
어제
675
최대
1,307
전체
490,819
사이트 소개 클로저스 공식 홈페이지 클로저스 갤러리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